고은 시집 '만인보'에 등장한 고영태 가족사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세상에 알린 고영태씨의 가족사가 고은 시인의 시집 '만인보(萬人譜)'에 소개됐습니다. 고영태씨 가족사가 등장하는 건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편과 '3355번-이숙자' 편입니다. 고규석과 이숙자는 고영태씨의 부모입니다. 고규석씨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시내로 일을 보러 갔다 오다 광주교도소를 지나던 중 군인들의 발포로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고규석씨와 희생자들은 숨진 지 열흘이 지나서야 광주교도소 안에 암매장된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고영태씨가 다섯 살 때였습니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는 고영태 가족의 생활상과 고규석씨 사망 이후 아내 이숙자씨가 남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고규석씨가 숨진 뒤 어렵게 생활하던 이숙자씨는 망월동 묘역 관리소 인부로 채용돼 5남매를 챙기며 근근히 삶을 이어갔습니다. 가족의 해피 엔딩은 막내였던 고영태가 펜싱 선수가 되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만인보 고규석·이숙자편 원문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이장 노릇/새마을지도자 노릇/소방대장 노릇/예비군 소대장 노릇/왕대 한 다발도 번쩍 들었지/(중략)
동네방네 이 소식 저 소식 다 꿰었지/싸움 다 말렸지/사화 붙여/사홧술 한잔 마시고/껄껄껄 웃고 말았지/(중략)
누구네 집 서울 간 막내아들/달마다 담배 사보내는 것도 알고/누구네 집 마누라가/영감 몰래/논물 몰래 대어/옆논 임자하고 싸운 일도 알고/
아니 아니/누구네 집 삽 두 자루/누구네 집 나락 열 가마/남은 것도 아는 사내/고규석/
다 알았지/다 알았지/그러다가 딱 하나 몰랐던가/
하필이면/5월 21일/광주에 볼일 보러 가/영 돌아올 줄 몰랐지/마누라 이숙자가/아들딸 다섯 놔두고/찾으러 나섰지/
전남대 병원/조선대 병원/상무관/도청/...중략.../그렇게 열흘을/넋 나간 채/넋 읽은 채/헤집고 다녔지/
이윽고/광주교도소 암매장터/그 흙구덩이 속에서/짓이겨진 남편의 썩은 얼굴 나왔지/가슴 펑 뚫린 채/마흔살 되어 썩은 주검으로/거기 있었지/
아이고 이보시오/(중략)
/다섯 아이 어쩌라고/이렇게 누워만 있소 속 없는 양반
만인보 단상3355 이숙자
고규석의 마누라 살려고 나섰다/(중략)/담양 촌구석 마누라가/살려고 버둥쳤다/
광주 변두리/방 한 칸 얻었다/
여섯 가구가/수도꼭지 하나로/살려고 버둥쳤다/
여섯 가구가/수도꼭지하나로 물밥는집/(중략)
남편 죽어간 세월/조금씩/조금씩 나아졌다/망월동 묘역 관리소 잡부로 채용되었다/그동안 딸 셋 시집갔다/
막내놈 그놈은/펜싱 선수로/아시안 게임 금메달 걸고 돌아왔다/
늙어버린 가슴에 남편얼굴/희끄무레 새겨져 해가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