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의 옷
어제 서울에서 있었던 일 입니다.
회의를 잘 마친 후 갑자기 김천에 있는 친족쉼터 시설장이 본인의 신앙 멘토이신 할머니 목사님 한 분을 모시고 들어왔습니다. 마침 저녁 시간도 되었고 목사님을 섬기면 복받는다는 어렷을 적 교육의 힘으로 제가
" 자~ 다 가시죠, 제가 오늘 저녁 사겠습니다"(이렇게 말하면 많은 것 같지만 인원은 저 포함 고작 4명이었습니다)라고 쿨하게 외쳤죠.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먹기 좋아하는 제가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 체한 느낌이 계속 들어서 저녁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고, 그 증상은 사실 회의 할 때부터 있어서 계속 숄을 걸치고 있었드랬습니다(손발이 찼거든요)
그런데 목사님께서 앉자마자 저를 보시고는
"대전 시설장님은 하나님 앞에서 그 가식의 옷을 벗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힘만 들꺼요" 이러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회실 들어왔을 때 마후라를 걸치고 있을 때부터 뭔가 가식적임을 느꼈다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제 감정이 어땠을 까요?(우리는 여기서 잠깐 멈춰 생각해야합니다. 어느 스님도 그러셨잖아요, 멈춰야 보인다고....)
첫 번째 제 감정은 '억울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같이 간 다른 시설장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이 두번째 드는 감정이었죠. 그래서 짚기좋아하는 저는
"목사님! 저 아세요? 오늘 처음 보신거잖아요. 그리고 그게 하나님 생각인지를 어떻게 압니까?"
그 후 상황은 말 안해도 아시겠죠 (아마 당황한 일행은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 몰랐겠지요)
하지만 세 번 째 들었던 감정은 곧 후회감이었습니다.
"에구 이 베드로같은 자야"
저는 베드로를 보면서 저를 봅니다. 예수님 오른팔로 온갖 기적 다 보고, 체험하고 초막 셋 짓겠다고 호언했던 사람이 고작 계집종 한 말에 그렇게 무너지는 허약한 자존감을 가진 그는 가끔 예수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동시에 자존감은 단기간에 생길 수 없는 거라는 것두요....
제가 오늘 아침 이 글을 쓰는 욧점은 지금부터입니다. 사실 그 목사님의 말씀은 제 약한 부분을 건드린게 맞는 말씀이지만 방법면에서 저를 좀 당황시켰다는 거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거라는 겁니다. 그렇게 화를 내면서 거부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어쩌면 그 분을 통해 원하시는 저의 또 다른 모습임으로 받아들였으면 제 마음도 넉넉해지고, 같이 간 주변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끼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통찰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분노라는 말보다 '화'라는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화는 한자의 '불 화'와도 같아서 격노는 그냥 불처럼 다 태워버리거든요.
우리 사랑하는 미동 식구님들~
오늘 하루도 화 내지 말고 행복하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