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에 대한 단상
요새 제 취미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성경말씀을 떠올려 보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문득 '만나'에 꽂히더군요. 우리는 이 땅에 평생 살고자 하는데 막말로(신령하게 시작하고 싶은데 또 막말을 하는군요 ㅠㅠ) 하느님께서 지금이라도 거두어가시면 우리는 '아얏'소리 못하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걸 제 주위의 의미있는 사람(significant person)들의 죽음을 옆에서 몇 차례 겪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서양 속담처럼 '경험은 학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도대체 왜(why) 다음날 두었다 먹으려고 숨겨 놓은 만나를 못먹게 만들었을까요?" 물론 어렷을 때부터 숱하게 들은 설교들을 떠올리면 나름대로 떠듬떠듬 이유를 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오늘 아침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깨달음은 '하느님께서는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깨닫게 하시는 분이시고,처지와 형편대로 만나게 하시는 분이시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열심히 살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은 '하루치 만나'의 분량밖에 안되는 거였다는 거죠. 아침에 눈 뜨면 서 '아~ 하느님, 오늘도 제게 기대하시는 무슨 일이 있어 제 목숨을 지난 밤 지켜주셨군요' 이런 마음은 진짜 성경을 교본으로 대할 때 떠오르는 문장이구요, 티끌보다 작은 우리들은 하루하루 감사의 조건을 찾으며 의미부여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거죠.
이야기가 길어졌는대요(지금부터가 진짜입니다) 요사이 우리 미동 법인은 참으로 고단한 발걸음을 디디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느님의 지혜와 은총을 간구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은 마음을 하느님께서 주셔서 이렇게 뜬금없이 홈페이지에 수족을 남깁니다.
'힘내자구요!!!'
모두 내외부적 조건들이 우는 사자처럼 이모양저모양으로 우리들의 취약함을 공격하고 있지만, (솔까말) 다윗보다 더 힘들지는 않잖아요. 그 힘든 와중에도 시편을 쓴 그 다윗, 그 후로도 여러 실수들로 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로 하여금 다른 위로(?)- 위대한 다윗도 저런 실수를 또 하는구나, 그럼 내가 하는 것도? -를 주는 인물이지만 결국 대대손손 우리에게 기억되는 인물로 남은거잖아요.
오늘 우리는 아이들과 선한 마음으로 기꺼이 초대에 응하신 아름다운 분 집에 가서 먹어도먹어도 안질리는(우리 아이들 선호식품 1위인) 삼겹살 파티를 합니다. 오가는길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서툰 글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