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ong Column

여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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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옷 중에서 내가 즐겨 입는 옷은 두어 벌
두어 벌을 위해 옷들이 장롱 속에 걸려 있다

식탁에 차려지는 그릇은 몇 개, 그 몇 개를 위해
한 쪽에 쓰지 않는 그릇들이 포개져 있다

자주 꺼내 보는 책 몇 권, 그 몇 권을 위해
수백 권의 책이 너무 오래 먼지를 뒤집어 썼다

몇 사람과 만날 뿐, 그 몇 사람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벌 떼처럼 윙윙거려야 했다

두어 벌 옷 때문에 세상의 장롱 속이 꽉 찼다
몇 개의 그릇, 몇 사람 때문에 세상은 포화다

눈물겨운 욕망들, 끝없는 집착, 더, 더,
보다 더 나은, 이 혼자 나이를 먹어 늙어터졌다


시집 '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를 읽다가 안정옥시인의 '여우 같다'는 詩 한 편에 마음이 찡해졌다.
누군가가 그랬다.
별 하나 빛나기 위해 창공이 다 필요하다.
제비꽃 하나 피기 위해 우주가 다 필요하다.
별 하나와 제비꽃 하나의  사치는 너무나 거대해서 소박하지만
유독 인간의 사치와 욕심에 구린내 나는 건 무슨 까닭일까?
보리 한 줌 움켜쥔 이는 쌀가마를 들 수 없고,
곳간을 지은 이는 곳간보다 큰 물건을 담을 수 없다.
성자가 빈손을 들고,
새들이 곳간을 짓지 않는 건 천하를 다 가지려 함이다.
설령 천하에 도둑이 든 들
천하를 훔져다 숨길 곳간이 따로 있겠는가?

평생 움켜쥔 주먹 펴는 걸 보니
저이는 이제 늙어서 새로 젊어질 때가 되었단다.
사순절이 끝나면,
나는 여우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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